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참고 인내하다 보니 어느새 송년회 D-Day다. 누군가 그랬다. '존버는 승리한다!' 하지만 아직 홀가분해지기에는 이르다. 송년회가 끝날 때까지는 좀 더 긴장해야 한다.

 

1. 송년회 시작

약 80명이 넘는 직책자께서 참여하는 송년회다 보니 부서장님, 팀장님, K매니저... 각각의 지시사항과 세밀함이 다르고 피드백도 천차만별이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간다...'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 이 순간 느꼈던 감정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선장이 여러 명일 때는 가장 윗 상급자의 말을 잘 듣도록 한다. 이런 상황에서 휘둘리다 보면 K매니저 같은 사람에게 도륙당하기 십상이다. 자신의 리딩을 따라서 잘 될 때는 생색내고, 안 될 때는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과 협업을 해야 한다면 명심하도록 하자.

아무튼 송년회를 같이 진행할 TF 구성원도 차출하고 콘셉트, 타이틀, 콘텐츠, 사회자도 모두 갖추었다. 리허설도 무사히 끝마쳤으니 이제 본 행사만 잘 마무리하면 된다. 그런데... 리허설 때는 어떤 이견도 없었던 K매니저가 갑자기 나를 따로 불러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시사항들이 모두 내가 할 것들이 아닌 데다가 여러 구성원의 일을 나에게 지시했다.

나 : 매니저님. 이거는 협의된 업무가 갑작스럽게 변경되는 것 같은데 다들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 일들은 제 일도 아닐뿐더러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니 제가 이거를 각자에게 전달하기보다는 잠시 모두 콜업해서 한 번에 전달하시는 게 좋을 듯한데 어떠세요?

K매니저 : 팀장님하고 얘기된 거니까 그냥 진행해. 그리고 지금 다들 정신도 없고 바쁜데 그냥 네가 찾아가서 전달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나도 바빠. 그리고 당신이 제일 한가해 보여!' 이 회사에 다닌 후로 입까지 차오르는 말들이 많아졌고, 그 말들을 도로 삼키는 일도 잦아졌다.

나 : 그럼 저도 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각자 찾아다니면서 지시사항 전달하기보다는 송년회 TF 단톡방에 내용 전달하겠습니다.

K매니저 : 다들 바쁜데 톡 볼 시간이 있겠냐고요?! 빨리 전달해! 이럴 시간에 다 전달했겠다!

'나에게 지시사항 전달할 시간에 네가 전달하지 그랬니...?! 너도 PM 아니니?!' 또다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K매니저를 제외한 송년회 TF 구성원과 단톡방을 만들고 5분 정도 미팅을 요청했다. 대면으로 변경된 지시사항을 모두에게 전달하면서 해당 변경사항은 총무팀장님과 K매니저의 의견임을 분명히 밝혔다. 갑작스럽게 변경된 지시사항에 잠시 혼란스러워했지만 일이기 때문에 모두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송년회는 예상보다 더 잘 흘러갔고 돌발상황도 있었지만 사회자의 대처로 매끄럽게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송년회는 끝을 향해 갔다.

 

2. 송년회의 끝

송년회는 큰 문제없이 클로징 했고, 부서장님께서는 고생한 TF인원들과 함께 뒤풀이 술자리를 갖고자 하셨다. 부서장님께서는 모두에게 덕담을 해 주셨고 특히, K매니저는 작년과 올해 모두 송년회를 잘 이끌고 마무리했다며 흡족함을 표하셨다.

'그래. 나는 아무 욕심 없다. 모든 공적 다 가져가시고 앞으로 다시는 당신과는 협업하고 싶지 않다...' 속으로 되뇌었다. 뒤풀이 자리까지 모두 마무리하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고 생각한 순간 K매니저로부터 개인 톡을 받았다.

'오늘 고생했다. 편의점에서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

프로젝트가 끝난 후 격려를 해주는 것을 보니 상급자로서 기본적인 리더십은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좋지 않은 감정을 흘려보내기에는 한참 부족했지만, 커피 한 잔 정도는 괜찮을 듯했다. K매니저와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 :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커피 잘 마시겠습니다!

K매니저 : 그래 너도 고생 많았다.

하루를 되뇌며 마무리하려던 그 순간 K매니저의 속사포 랩(?)이 시작됐다.

K매니저 : 넌 오늘 하루 송년회 잘 준비했다고 생각하냐? 진행해 보니 행사의 플래카드 설치 위치, BGM 선정, 음향 타이밍, 사회자 멘트, 콘텐츠, 직책자 자리배치, 행사 장소까지 다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 넌 그런 생각 안 드냐?

나 : 지나고 보면 아쉬움이 없을 순 없지만, 그래도 부서장님께서도 흡족해하셨는데 이 정도면 선방한 거 아닐까요?

K매니저 : 그런 생각으로 일하면 발전이 없는 거야. 내년에도 이런 식으로 할래? 계속 이렇게 할 거야??

나 : 내년에는 내년의 상황에 맞춰서 당연히 다른 콘셉트, 타이틀을 갖고 진행해야죠. 그리고 내년 송년회는 내년 가서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반성하고 아쉬움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지금 시간이 벌써 자정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하시고 내일 말씀하시는 게 어떠세요...?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 사람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판단 하나가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K매니저 : 넌 그런 태도로 일하면 일을 잘할 수 없어!

K매니저의 설교는 끝날 줄 모르고 거의 1시간 넘도록 부정적인 피드백을 쏟아냈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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