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꽤 흘렀고, 그럭저럭 회사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11월을 맞이했다. 내 윗 상급자가(이하 'K매니저') 곧 있으면 '전사 송년회'를 준비해야 하니 잘 준비해야 한다며 언질을 줬다. (당시에 난 총무팀 구성원이었다.) '전사 송년회는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10월부터 K매니저는 나에게 전사 송년회 준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거냐며 노래를 불러댔다. '전사(社)'라는 단어가 큰 압박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전사 인원이 약 2,500명인데 전체 송년회를 진행한다는 이야기인가...?'

 

1. 송년회 구상

전임자를 찾아갔다. 내가 입사할 당시에 전임자는 타 팀으로 이동 신청을 했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사내 공모를 하였으나 신청자가 없어 해당 포지션에 내가 지원한 것이었다. 전임자는 같은 부서 내 타 팀으로 이동했기에 자주 대화할 수 있었고 이는 나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줬지만 아주 잠시였다. 모든 회사가 그렇듯이 자기 일이 아니면 관여 자체를 안 한다. 중소-중견기업은 멀티플레이어가 되기를 요구하지만 대기업은 보통 자기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칼같이 선을 긋는다. 말하자면, 멀티플레이어보다는 프로페셔널을 추구한다.

결국, 큰 실익은 없었다. (송년회는 사실 K매니저의 일이었는데 업무분장하면서 전임자에게로 넘어왔단다. K매니저가 상급자이기에 직급으로 찍어 누르는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전임자의 불만을 열심히 들어줬다. 특히, 책임전가가 주특기이니 조심하라는 전임자의 신신당부 및 조언이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매년 모든 송년회를 지켜봐 왔던 사람이기에 물어보면 잘 알려줄 거라고도 덧붙였다. 앞으로의 불길한 미래가 그려졌고,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다...) 막막할 때는 과거 자료를 찾아보면 큰 도움이 된다. 16년도 송년회 자료를 찾아보며 송년회 구상을 시작했다.

 

2. 전사 송년회 - 직책자 송년회

전사 송년회는 결국 팀장급 이상이 참여하는 직책자 송년회였다. 그렇다고 해도, 팀장 약 60명, 임원진 약 20명, 송년회 준비 인원까지... 약 1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장소, 날짜 및 시간, 송년회 진행 업체, 콘셉트 등 적지 않은 규모의 이벤트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애초에 '직책자 송년회'로 명명하지 않고 왜 '전사 송년회'로 이름을 붙였는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의문에 소비할 시간은 없었다. (이 작고 단순한 의문이 나에게 또 다른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일단, 16년도 송년회에 대한 모든 피드백을 체크하였고, 타기업의 송년회 자료도 서치하여 팀장님께 기획서 초안 내용을 보고 드리려 하니 우선 기획안을 먼저 읽어보시겠다며, 메신저를 통해 기획안을 먼저 공유해 달라 하셨다. 팀장님께 기획안을 공유드리고 한참 뒤에 나와 K매니저를 자리로 부르셨다. 팀장님께서는 기획안만 보시고 보고를 별도로 받진 않으셨다. (당시 총무팀장님은 16년도에 모기업에서 관계사 이동을 통해 이직하셨고 경력 통틀어 첫 팀장직을 역임 중이셨다.) 팀장님 시각으로는 이제 막 입사한 경력직 구성원 혼자는 부족하다고 느끼신 듯하고, 이제 막 2년 차 팀장 직급을 수행 중이신데 앞으로의 앞길을 망치고 싶지 않으신 듯하다. 팀장님께서 K매니저와 나에게 공동 프로젝트 매니저(PM)로서 송년회를 진행할 것을 주문하셨다. '뭐라고...!?!?' 말은 공동 PM이지만 누가 봐도 K매니저가 PM이고 나는 서포터가 분명하다. '이럴 거면 왜 송년회 업무를 넘긴 거야?' 불만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좋게 넘어가고 싶은 마음에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일 뿐임을 알지 못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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